1차세계대전사 영국군의 참패 - 갈리폴리 전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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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차세계대전사 영국군의 참패 - 갈리폴리 전투

    역사를 좋아하는 많은 분들이 있으시지만, 저 역시 누구 못지 않게 역사에 대해서
    관심도 많고 재미도 느끼고 있기 때문에 다른 분들이게도 재미난 역사 이야기를 
    해보려고 합니다.
    요즘 역시나 제가 좋아하는..매불쇼에서 역사이야기를 해주고 있는 썬킴처럼은
    못하겠지만 그래도 아는 수준에 한해서 얘기를 전해드리고자 합니다.

    역사덕후들이 가장좋아하는 소재가 바로 전쟁사가 아닐까 싶습니다.
    그중에서도 세계대전!! 1차 2차 그 전쟁중에 있었던 전투하나하나 얼마나 비참하고
    그리고 그렇게 될 수 밖에 없었던 스토리들를 보다 보면 전쟁사에 빠지지 않을 수 없습니다.

    오늘은 1차세계대전중 일어났던 해가 지지 않는 나라라고 불리우면 1차세계대전이 일어나기
    전까지는 대영제국으로써 세계제1의 제국을 완성했었던 영국이 이빨빠진 호랑이라고
    비웃던 오스만제국에게 뼈아픈 패배를 당했던 전투인 갈리폴리전투를 소개해드리려 합니다.
    갈리폴리전투에는 우리가 너무도 잘아는 2차세계대전당시 영국을 이끌던 처칠이 참여하기도
    했던것으로 유명한 전투인데요.

    어떻게 하다 영국은 이미 쇠망했던 오스만제국에게 패배를 당하게 되었던 것일까요?
    20세기 초반에는 이미 오스만제국은 산업화에 뒤쳐지고 그외에도 내부의 요인들로인해
    이전의 찬란했던 제국의 포스는 간데 없이 종이호랑이로 전략한 상태였습니다.
    그러던중 오스만제국은 해군력을 강화하기 위해 영국의 드레드노트큽 전함을 구입하게 됩니다.
    공교롭게도 그들이 전함을 인도받기위해 영국에 도착한 1914년 1차 세계대전이 발발하게 되는데요
    당시 최강의 해군을 자랑한 영국이였지만 독일 역시 당시 2위의 해군력을 유지하고 있던지라
    한대의 전함도 아쉬웠던 영국은 오스만제국에게 판매하려던 전함을 영국군에 편입을 시켜버립니다.
    이 사건을 주도한 인물이 바로 윈스턴처칠 당시 해군성 장관이였습니다.

    이미 거금을 지불한 오스만은 강력한 반발을 해보지만 영국의 결정을 되돌릴 수 없었고
    마침 이때 독일제국이 이사이에 오스만제국에게 접근을 하게 되는데요.
    이사건이 결국 오스만제국이 독일과 헝가리오스트리아제국의 연합에 같은편으로 참전하게 되는
    아이러니한 결과를 넣게 됩니다.
    결국 영원한 동맹도 적도 없다는 말이 다시한번 여기서도 보여주는 것이 아닌가 싶습니다.

    오스만은 3국동맹을 맺고 흑해와 지중해를 연결하는 '다르나넬스 해협'을 봉쇄하게 되며
    영군은 이 해협의 봉쇄를 풀기위해서 오스만 제국의 수도인 이스탄불을 함락하기 위해
    진격을 하게 됩니다 영국은 단순하게 함포로 해안의 포진된 해안포들을 제압후에 
    상륙하여 기지를 점령하기만 하면 되었으나 육군의 반대로 해군성이였던 처칠은
    해군만으로 이 전투를 수행하게 됩니다.

    1915년 2월 영국과 프랑스의 연합군은 다르다넬스 해협에서 포격을 시작하며
    갈리폴리전투가 시작되게 됩니다.
    하지만 쉽게 점령할 수 있을거라 생각했던 전투는 독일과 오스만의 강한 저항에 부딪히게 됩니다.
    이렇게 되자 영국프랑스군은 16척 함선중 5척을 손실하는 대패를 하고 마는데요
    결국 이전투의 패배로 영군해군사령관과 처칠 해군성이 해임과 경질을 당하고 맙니다.

    해군만으로 이길수 없겠다는 판단하에 이번에는 해군과 육군이 같이 전투에 참여하게 되며
    갈리폴리 반도에 상륙을 시도하게 됩니다.
    원래 계획되로라면 함선이 해안기지에 포격을 가하고 나면 육군이 상률하여 고지를 점령하는 것이였지만
    육군과 해군의 언발라스로 함포사격후 제때 상륙을 하지 못하게 되면서 고지에서 기다리고 있던
    오스만군에게 무차별적인 사격을 받게 된 영국군은 엄청난 사상자를 내게 됩니다.

    이런 상황을 인지못한 지휘부는 계속 돌격을 지시했고 결국 기관총 진지에 줄줄이 병력들이
    들어오면서 최악의 상황을 맞이 하게 됩니다.
    현장을 모르는 지휘부의 실수까지 더해진 이 갈리폴리 전투는 이후로도 무려 8개월간이나 계속되었으며
    1916년 1월 8개월간 40만명을 투입한 영국군은 결국 25만명의 사상자만 남긴체
    퇴간을 하게 되었습니다.


    흔히 무적의 대영제국을 생각하지만 이 갈리폴리 전투는 1차세계대전은 물론 역사상 유례없는 영군군의
    대참패로 기록되게 됩니다.


    아이러니하게도 처음 이 전투를이끈 처칠은 나중 영국의 수상이 되었으며
    반대로 갈리폴리전투의 불굴의 영웅 오스만투크르제국의 무스타파 케말 대령은 훗날 터키 공화국을 
    건국하게 됩니다.
    그가 그 유명한 터키의 국부 아타튀르크 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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